정비 정보 공유 규정 여전히 무시…차 정비업계·소비자 한숨 여전

자동차 제작사가 차량 정비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은 차량 무상보증 기간이 끝났음에도 정비 비용이 2배 넘게 비싼 지정 정비 사업소를 찾고 있다. 국토교통부(국토부)가 지난해 3월 자동차 정비 정보를 일반 정비업체에 제공하도록 강제했지만, 자동차 제작사가 따르지 않고 있어서다.


17일 자동차 정비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정비 필수 장비인 범용 고장 진단기의 데이터 프로토콜을 공개한 자동차 제작사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토콜은 데이터를 교환하기 위해 사용하는 통신 규칙으로 차량 작동 기반인 전자제어장치(ECU)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필수 정보다.

조헌종 한국자동차전문정비사업조합연합회 전무는 “자동차 ECU는 점화 시기와 연료 분사, 공회전뿐만 아니라 엔진, 변속기, 제동장치 등 자동차가 구르고 멈추는 모든 부분에 관여하는 장치로 ECU를 확인하지 않으면 고장 원인을 밝힐 수 없다고 보는 게 맞다”면서 “자동차 제작사가 이를 공개하지 않는 이상 카센터는 수리에 나설 수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 제작사가 국토교통부의 규정을 무시한 채 일반자동차정비업소 및 정비업자에게 정비와 관련된 장비·자료 등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 사진 = 조현경 미술기자

◇ 정비 정보 임의 제공…사유서 제출도 안 해

이에 국토부는 지난해 3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범용 고장 진단기 데이터 프로토콜 제공을 정비 정보 제공의 핵심으로 삼았다. 데이터 프로토콜 제공 차질 시 사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사유서를 제출 시 1년간 데이터 프로토콜 공개를 유예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사유서를 제출한 자동차 제작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제작사는 정비 설명서를 포함한 고장 진단기 데이터 프로토콜 일체를 홈페이지와 정비업계에 제공했다는 입장이다. 르노삼성자동차 관계자는 “차량 정비사 전용 사이트를 개설했다”면서 “고장 진단기 구매도 해당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동차 제작사가 말하는 고장 진단기 데이터 프로토콜은 국토부가 공개하도록 한 범용 데이터 프로토콜이 아닌 전용 데이터 프로토콜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용 고장 진단기 데이터 프로토콜은 특정 차종으로 사용 가능 영역이 제한돼 진단기 구매에만 수백만에서 수천만원이 든다.

예를 들어, 르노삼성에서 만든 SM5를 수리하는 데 필요한 전용 고장 진단기와 SM3를 수리하기 위한 고장 진단기를 각각 구매해야 하는 셈이다.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있는 한양공업사 김아무개 사장은 “작게는 500만~800만원, 많게는 3000만원까지 하는 진단기를 차종별로 구매해둘 수는 없다”면서 “엔진오일 교환이나 도장과 같은 기본적인 것 외엔 수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수리 못 해요”…피해는 소비자 몫

게다가 자동차 제작사는 정비 설명서 확인에도 연간 수백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일반 정비업체에 내게 하고 있다. 특히 아우디가 공개한 차량 정비 설명서는 연간 열람료가 38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폴크스바겐은 220만원, 벤츠는 170만원의 열람료를 받고 있다.

문제는 자동차 제작사의 정비 정보 독점이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실제로 자동차 제작사가 지정한 정비업체가 없는 지방 소비자는 수리를 위해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동 비용을 지불해가며 찾아 나서야 한다. 차량 정비 수요가 몰려 예약정비만 가능한 곳도 허다하다.

벤츠 준중형 세단 C클래스 차주 박유선(30)씨는 “강원도 속초로 가는 길에 차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근처 카센터에 갔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돌아섰다”면서 “카센터 사장님은 무슨 문제인지는 짐작이 가지만, 고장진단기가 없어 선뜻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강원도 원주시까지 두려움을 안고 이동해서 간단한 수리를 비싸게 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완성차 업체는 일반 정비업체를 무상 수리 기간이 끝난 차를 맡아주는 자동차 업체 동반자로 봐야 한다”며 “정비 설명서나 범용 고장 진단기 제공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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